요즘 법정 관련 뉴스를 유난히 자주 접하게 된다. 평소 다음숏폼에 빠져 지내는 나지만, 가끔은 시사 문제에 대해 한마디 적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최근에 본 기사 중 하나가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 기사는 한 재판장에서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법정에서 궤변을 늘어놓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피고인은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며,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양 행세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법정은 진실을 밝히는 장소여야 하는데, 오히려 거짓과 궤변으로 얼룩지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궤변은 비단 법정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변명하고, 심지어 상대방을 탓하며 상황을 모면하려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실수를 했을 때 ‘다른 사람이 나를 잘못 이끌었다’거나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이런 태도는 개인의 성숙도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요인이 된다.
특히 법정에서의 궤변은 더욱 치명적이다. 법과 정의는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인데, 이를 우습게 여기는 태도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해악을 끼친다. 실제로 한 통계에 따르면, 법정에서 피고인이 거짓 진술을 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 문제를 넘어,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도 어렸을 적에 잘못을 저지르고 부모님께 궤변으로 둘러댄 적이 있다. 시험 점수가 나쁘게 나왔을 때, ‘선생님이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고 둘러댔던 기억이 난다. 그때 부모님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으셨고, 결국 나는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경험은 나에게 정직함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어떨까?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인해 거짓 정보가 빠르게 퍼지고,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법정의 궤변은 더욱 설득력을 얻을지도 모른다.
법정에서의 궤변은 단순히 개인의 잘못을 넘어,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반영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정직함과 책임감을 배우지만, 정작 성인이 되어서도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권력이나 돈이 개입된 사건일수록 궤변은 더욱 교묘해진다. 유명인이나 정치인들이 법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며 온갖 논리를 펼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법정의 역할이다. 법정은 단순히 유죄와 무죄를 가리는 곳이 아니라,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곳이어야 한다. 따라서 법관은 피고인의 궤변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증거와 사실에 기반해 판단해야 한다. 또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정직함의 가치를 되새기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다.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며, 때로는 변명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유혹을 이겨내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법정에서의 궤변은 결국 자신을 더 큰 위기로 몰아넣을 뿐이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고, 거짓은 더 큰 거짓을 낳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법정에서부터 정직함이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개인의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정직함을 실천하고, 잘못이 있을 때는 궤변이 아닌 용기 있는 인정을 선택하길 바란다. 법정은 우리 사회의 거울이자, 정의의 최후 보루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법정 관련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는 단순히 흥미 위주로 보지 말고, 그 이면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궤변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사회의 가치관을 흔드는 위험한 행동이다. 우리 모두가 경계하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